[칼럼] 국회 청원 성립 기준, 왜 이렇게 높나 했더니...
국민이라면 누구나 법안과 의견을 제안할 수 있도록 2020년 1월 도입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실제로 해보니 문턱은 높았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합니다. [편집자말]
2020년 1월 9일, 20대 국회 제374회 제2차 본회의에서 '국회청원심사규칙'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사실, 국회는 2년 전부터 국회에 전자청원시스템 도입을 논의했습니다. 추측컨데 청와대 청원이 활성화되면서,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할 의무를 가진 국회에 조금은 자극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2018년 11월 27일, 20대 국회 운영위원회는 2019년 12월 1일부터 국회에 전자청원시스템을 시행하기로 합의하고, 그 이듬해인 2019년 4월 5일, 전자청원시스템 도입과 시행일을 명시한 국회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됩니다.
국회법만 개정한다고 전자청원시스템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위해 별도의 시스템을 도입하고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도대체 몇 명이 동의해야 청원이 성립된 것으로 볼 것인가?', 즉, '전자청원 성립기준'을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국회법은 전자청원의 성립기준을 국회청원심사규칙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청원심사규칙을 개정해야 하지요. 2019년 12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니 사실, 홈페이지 개설 등 여러 준비를 위해서는 여유롭지는 않았습니다.
문제는 국회
2019년 4월 국회는 난장판이었습니다. 선거제, 공수처,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같은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이를 둘러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물리적 저지로 국회는 사실상 마비되었고, 전자청원의 성립기준을 위한 국회 논의는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전자청원의 성립기준이 다시 국회에 안건으로 상정된 때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시행일을 불과 3일 앞둔 2019년 11월 2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는 드디어 '전자청원 성립기준'을 담은 국회청원심사규칙을 논의합니다.
국회 사무처는 국회의장 직속 국회혁신자문위원회의 제안을 청원 성립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즉 '30일 이내에 20명 이상의 국민 찬성을 받아 공개하고, 공개 후 90일 이내 5만 명 이상의 국민 동의를 받을 경우'라는 요건을 제안한 것입니다.
당시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는 10명의 위원이 참석했고, 10명의 의원 중 단 두 명의 위원만이 전자청원 성립 기준에 대해 의견을 표명합니다.
▲ 제371회 국회 운영위원회 운영개선소위원회 제1차 회의록 29쪽, 30쪽 ⓒ 참여연대
두 명의 위원과 침묵하던 나머지 8명의 위원
당시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성립요건을 청와대 청원보다 동등하거나 좀 더 쉬워야 한다면서도, 20명이라는 공개 요건이 너무 적다며 높일 것을 주문했고, 90일 이내라는 성립 요건 또한 30일로 맞추자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은 청원이 너무 간소화해지는 것이 지나치다 보면 정반대의 청원이 마구잡이로 올라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국회가 어떤 곳의 손을 들어 줘야 할지부터 굉장히 난감해질 수 있으므로, 청원 요건을 조금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같은 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정양석 의원이 국회 사무차장과 위원장이 의견을 조율해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진행 발언 후, 그렇게 모든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30일 이내 10만명이라는 기준은 단 한차례 회의를 통해, 단 두 명의 의원만이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성립기준 의견을 제시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30일 이내 100명의 찬성'으로 공개하고 공개 후 '30일 이내 10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성립된다는 국회청원심사규칙이 2020년 1월 9일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1주년(?)이 다가옵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시행 1년, 지금 상황은?
참여연대가 국회 국민동의청원 1년 즈음해 그간 성립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아니라, 미성립 및 미공개된 청원의 현황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팩트시트] 2,121건 국민동의청원 시도, 단 3건만 국회 처리?!)
현황은 이렇습니다.
▶2020년 1월 10일부터 2020년 12월 8일까지, 30일 이내 100명의 찬성 모으기라는 1단계 미션을 통과하지 못한 청원은 총 1912건에 달합니다. 통과한 것은 209건입니다.
▶1단계를 통과한 209건의 청원 중 2단계, 국회의 청원요건 심사 미션을 통과하지 못한 청원은 44건입니다. 통과한 것은 165건입니다.
▶2단계를 통과한 165건의 청원 중 3단계인 30일 이내 10만명의 동의 모으기 미션을 통과하지 못한 청원은 148건에 달합니다. 3단계를 통과한 청원은 17건입니다.
▶즉 2121건의 청원 시도 중 청원이 성립한 것은 단 17건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3단계 통과가 전부는 아닙니다. 청원이 성립되었으니 지금부터는 국회의 심사 단계를 통과해야 하지요. 소위 회부되기, 소위 심사 통과하기, 상임위 처리 통과하기,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 통과하기를 거쳐 마지막 관문인 본회의 통과하기도 있습니다.
총 8단계의 미션을 모두 통과한 청원은 3건에 불과합니다. 그 중 2건은 대안반영 폐기처리되었고, 나머지 1건은 본회의 불부의 되었죠. 대안반영폐기란 청원의 내용을 포함한 여러 법률 개정안을 병합심사해 위원회 대안으로 재탄생했기 때문에, 즉 청원의 취지가 반영된 법안이 '대안'으로 '반영'되어 굳이 국회가 심사를 계속할 이유가 없으므로, '폐기'하겠다는 것입니다. 본회의 불부의란 청원의 취지가 달성되지 못할것이 분명하거나 혹은 이미 다른 방법(법안)으로 달성되었기 때문에 국회에서 심사를 계속하지 않고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만약, 국회의장 직속 국회혁신자문위원회가 제시한 것과 같이 30일 이내 20명 이상의 찬성으로 공개, 공개 후 90일 이내 5만 명 동의로 청원이 성립되도록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지난 1년간 청원 찬성과 동의 현황을 그대로 가져와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애초부터 기준치가 낮았다면 더 많은 참여가 있었을테고,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도 있지만요.
30일 이내 20명의 찬성으로 공개요건이 설정되었다면 101건의 청원이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더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해당 청원들은 미공개 처리되었기 때문에 실제 공개 후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동의를 받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청원이 성립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90일 이내 5만 명의 동의로 청원이 성립한다면 최소 3건이 더 국회 심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간이 30일에서 90일로 3배 증가하는만큼 동의를 얻는 청원은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청원 성립 기준으로 인해 청원이 성립되고 국회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회는 왜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성립 기준을 이토록 높게 설정했을까요?
답은 앞서 보셨던 20대 국회 운영위원회 국회운영개선소위원회 회의록에 있습니다. 단 두 명의 의원의 우려 의견과 침묵하던 8명의 의원의 묵인이 있었기에 이런 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청원성립기준을 혁신위 제안만큼 낮춘다하더라도, 성립되는 청원 수가 약간 증가 할 수 있지만 일각의 우려처럼 남발되고 국회 심사가 어려울 정도로 넘쳐나는 수준이라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모든 국민이 청원할 수 있게, 국회 온라인 청원제도를 바꿉시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성립 기준은 바뀌어야 합니다. 국회사무처에 일이 너무 많으니 줄이자거나, 비실명으로 청원에 참여할 수 있는 청와대 청원과의 단순비교 대상도 될 수 없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은 헌법이 규정한 국민의 청원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안으로 논의되어야 하지, 높은 성립기준을 설정해 국민의 청원권을 배제하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국회가 할 일은 보다 많은 국민이 청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원권을 보장하고 성립된 청원에 대해 심사하는 것이지, 국민들이 청원에 대해 찬성하고 동의할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청원 성립 기준을 대폭 낮추어 보다 많은 시민들의 청원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토록 높은 국회 국민동의청원 성립 기준과 청원에 대한 국회 심사의 문제점 등을 알리고 개정하기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개선TF에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생생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너머 산인, 국회 국민동의청원. 함께 바꿔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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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동의청원이 왜 이래 ①] 디지털 소외계층은 '배제'... 모든 국민이 할 수 있게 해야
포기하는 사람 속출... 이거 정말 '권리' 맞나요?